[삼국지8 리메이크를 하며] 아이 둘 아빠가 다시 만난 여포, 그리고 코에이에 바라는 것
👨👦👦 [삼국지8 리메이크를 하며] 아이 둘 아빠가 다시 만난 여포, 그리고 코에이에 바라는 것
“야, 조조가 또 배신했어!”
“유비는 역시 인덕이지~”
초등학교 국민한교 시절, 친구 집에 모여 앉아
도트가 뿌연 486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
삼국지3를 하던 그 시절.
그때는 한 명의 장수를 고르기보다는 세력을 움직이고, 도시를 먹고, 병력을 훈련시키는 일들이
마치 내가 진짜 군주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.
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르고,
나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.
어느 날, 스위치 e숍을 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‘삼국지8 리메이크’.
그 순간은 마치 잊고 있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.
지체 없이 구매했고, 기기 충전도 안 기다리고 바로 시작했다.
🐎 장수제의 로망, 여포로 시작했지만…
이번 삼국지8 리메이크는 ‘장수제’ 시스템이 핵심이다.
국가나 세력 전체가 아닌, 한 명의 장수로 삼국지를 살아가는 방식.
그중에서도 ‘무력의 끝판왕’ 여포를 선택했다.
장비나 관우와 겨뤄도 밀리지 않는 폭발적인 전투력, 독보적인 카리스마.
게다가 딸을 조조에게 줬다는 스토리까지… 늘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었지.
나는 생각했다.
“그래, 유비 진영으로 가서 도원결의도 체험하고, 여포와 삼형제가 함께 싸우는 IF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자!”
그런데…
- 유비 진영에 접근은 가능했지만, 도원결의? 없음.
- 관계 수치 올리고, 충성도 높이고, 사심을 담아 ‘영입 요청’ 날렸지만… 퇴짜.
- 상성 시스템 때문인지, 여포의 길은 외롭기만 했다.
꿈꿨던 **‘내가 만드는 삼국지 스토리’**는 생각보다 훨씬 제한적이었고,
‘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론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자유도’는
나를 금방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.
🧠 코에이, 이제는 달라져야 할 시간
코에이는 분명 훌륭한 IP를 갖고 있어.
삼국지, 대항해시대, 신장의 야망, 태합입지전...
이 중 어떤 이름을 꺼내도 게이머들의 추억이 살아나지.
하지만 추억을 계속 우려먹는 것과
**그 추억을 ‘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발전시키는 것’**은 완전히 다르다.
지금의 코에이 리메이크는,
기껏해야 HD화면, 약간의 인터페이스 개선, 시나리오 조금 추가가 전부야.
게임의 본질은 과거 그대로, 아니면 오히려 편의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어.
🏰 CK3처럼, 인물 중심의 내러티브가 필요해
비교 대상은 역시 또 나와야지 — 크루세이더 킹즈 3 (Crusader Kings III).
이 게임은 그냥 땅 따먹기가 아냐.
- 캐릭터는 성격, 특성, 종교, 문화를 갖고 살아가고,
- 나이를 먹고 늙고 죽으며,
-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, 동맹을 맺기 위해 정략결혼을 한다.
- 반역, 간통, 종교개종, 몰락, 부흥… 수많은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얽힌다.
즉, 단순히 전략게임이 아니라 인간 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시뮬레이션인 거야.
그 속에서 나는 한 가문을 이어가는 플레이어로 살아가며, "나만의 역사"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.
반면 삼국지8 리메이크는?
- 인물은 있지만 개성이나 서사가 없다.
- 플레이가 반복되며, 스토리는 정해진 대로 흐른다.
- 현대 게이머가 원하는 내러티브 플레이, 자유도, 인간관계 시뮬레이션은 턱없이 부족하다.
💬 그래도 고맙다, 삼국지
이렇게 비판을 쏟아냈지만, 사실 나는 이 게임이 고맙다.
왜냐하면
내가 아이였던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해줬으니까.
아이들이 잠든 밤, 조용히 스위치를 켜고 삼국지를 플레이하면서
문득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.
그때 그 친구, 그때 그 방, 그때 그 흑백 도트의 여포.
그리고 나는 생각한다.
이런 멋진 IP가, 더 멋지게 다시 태어나길.
코에이도 이제는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지 말고,
새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도전해주면 좋겠다.
코에이 진짜 좀 부탁한다.
삼국지, 대항해시대
멋지게 되살려주라...
신작이 나와도 이제 기대하지도 않는다.
혹시나 싶어서 구매하는 정도인데...